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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1월호 - 과학 분야 정보
금융수학
카오스 경제에서 질서를 찾는다
| 글 | 김대공 기자ㆍa2gong@donga.com |
로켓 과학자. 이름만 들어서는 우주 왕복선을 만들고 새로운 우주 발사체를 개발하는 물리학자나 공학자 쯤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물론 이들의 대부분은 미 항공우주국(NASA)같은 연구소에서 차세대 로켓 연구로 맹활약을 떨치고 있다. 하지만 로켓 과학자가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뉴욕의 월가에도 있다면?

로켓 과학자가 금융시장으로?
자연과학자인 로켓 과학자들이 주식과 채권, 외환 등 다양한 형태의 금융상품이 거래되는 월가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들의 전공은 금융수학. 로켓을 연구하는 고등수학 기법을 금융분야에 적용시키는 것이다. 즉 여러 금융상품의 가치가 금리와 환율, 물가 등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수학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당한 현재가격을 계산하며, 여러 금융상품이나 자산에 어떻게 투자하는 것이 개인이나 기관에게 최적의 만족을 주는지 연구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고등수학을 이용해 여러가지 금융상품을 분석하고 새로운 금융기법을 개발하는 일이다.

금융은 쉽게 말해 돈의 흐름을 파악하고 예측하는 분야라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수학은 역사 초기부터 금융분야와 자연스럽게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응용수학의 초기작품이라 할 수 있는 주판이나 계산기는 금융거래와 장부기록을 원할하게 해줬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주식과 채권 등 다양한 형태로 자본시장이 발달함에 따라 금융시장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주식이나 채권은 미래 현금흐름의 가치를 대변하는 일종의 상품이다. 여기에는 미래 경제 상황이나 이자율과 같은 불확실성과 이에 따르는 위험성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과거의 덧셈이나 뺄셈같은 단순한 연산만으로는 오늘날의 금융시장을 예측하고 모형화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금융을 다루는 수학의 한 분야로 금융수학이 탄생했다.

포항공대 수학과의 최성섭 교수는 “금융수학은 이과의 대표적 학문인 수학과 문과의 경제·경영학이 혼합된 퓨전학문”이라며 “복잡한 금융 현상을 명쾌히 해석하는 유용한 도구”라고 말한다. 뼈대인 수학으로는 확률과 통계, 미분방정식, 함수해석학, 게임이론 등 첨단수학 기법이 쓰인다.

이런 수학적 도구는 금융분야의 각종 불확실성(위험)을 줄이고 수익성을 증가시키는데 유용하게 활용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외환위기와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를 겪으면서 금융위험에 대한 체계적 관리와 대비를 위해 금융수학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열전도 방정식에서 탄생한 노벨경제학상
그러나 금융수학은 이미 1970년대 이후부터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금융시장에서는 새로운 종류의 금융상품인 파생금융상품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파생금융상품이란 농산물과 외환, 주식 등과 같은 기초 자산이 되는 금융상품을 기초로 이들의 변동에 따른 손실위험을 피하거나 최소화한 상태에서 수익을 보장할 수 있도록 거래자의 특수한 조건에 맞게 고안한 새로운 거래기법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신문 경제란에 자주 언급되는 ‘옵션’(option)이 있다. 옵션이란 일정기간 동안 주식이나 통화 등의 금융상품을 지정하는 가격으로 사고 팔 수 있는 권리를 거래하는 것이다. 크게 살 수 있는 권리를 거래하는 콜옵션과 팔 수 있는 권리인 풋옵션이 있다.

예를 들어 2002년 12월 어느 날 △△전자의 주식가격이 1주당 3만원일 때, 한 증권사가 2003년 6월까지 △△전자 주식을 3만5천원에 살 수 있는 권리증서, 즉 콜옵션을 발행한다고 하자. 이때 콜옵션을 미리 사둔 고객은 △△전자 주식이 폭등 해 1주당 가격이 4만원이 되도 이 주식을 3만5천원에 살 수 있다. 하지만 콜옵션을 발행한 증권사는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다. 이처럼 콜옵션은 발행시기에 적정한 가격을 정하기가 무척 어렵다. 콜옵션을 너무 비싸게 발행하면 아무도 안 살 것이고, 싸게 발행하면 발행한 당사자는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옵션이라는 상품이 처음 개발됐을 때, 이의 적정한 가격을 책정하는 문제가 경제·경영학자들의 큰 ‘화두’였다.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바로 미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블랙이라는 수학자와 경제학자인 숄즈였다. 블랙과 숄즈는 오랫동안 옵션의 적정한 가격 산출 방법에 대해 연구해오고 있었으나, 좀처럼 해결의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블랙은 고전 열역학의 열전도 방정식이 자신이 추구하는 문제와 비슷하다는 점을 떠올렸다. 열전도 방정식은 이미 19세기 물리학자들이 풀어놓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면 옵션의 가격 결정 방정식도 쉽게 풀리리라는 생각이었다. 블랙의 생각은 맞아 떨어졌고, 숄즈와 함께 둘은 마침내 옵션의 정당한 가격을 산출하는 ‘옵션가격 결정이론’을 완성했다.

블랙-숄즈의 옵션가격 모형은 금융분야에 있어서 물리학에서의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의 업적에 견줄 만큼 혁명적이라고 평가된다. 1973년에 발표된 이 논문은 1997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블랙과 숄즈는 그때까지 경험과 직관에만 의존하던 옵션가격의 판단기준을 좀더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만들었다. 또한 옵션이나 다른 파생금융상품의 발행에 따른 위험 제거방법을 제시했다. 실제로 옵션 발행자는 기초 자산의 가격변동으로 인해 엄청난 위험을 부담하게 되므로 많은 금융회사들이 옵션 판매를 꺼리고 있었다.

그러나 블랙과 숄즈의 수학적 모형에 따라 옵션을 발행하면 정상적인 시장에서 거의 95%까지 옵션 판매에 따르는 위험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기술상의 혁신에 따라 금융회사들은 다양한 종류와 액수의 옵션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수학은 기본, 철학과 심리학도 섭렵
포항공대 최성섭교수는 "금융수학은 경제학은 물론 심리학, 철한, 역사 등의 다양한 분야가 접목된 학문인 만큼 까다롭지만, 자신의 역량도 충분히 펼칠 수 있는 도전할 만한 분야"라고 말한다.
블랙과 숄즈가 이용했던 물리학의 열전도 방정식은 복잡한 편미분 방정식을 다룰 수 있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1970년대를 기점으로 금융분야에서 자연과학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마침 1970년대는 세계 경제체제가 큰 변동을 겪고 있었으며, 석유 파동으로 불어닥친 경제위기로 인해 혼란하던 시기였다. 또한 1970년 말부터 미국의 달 계획이 서서히 주춤하면서 NASA의 많은 과학자들은 이직의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이때 블랙과 숄즈의 성공은 자연과학자에게 또다른 비전을 제시했으며, NASA의 많은 로켓 과학자들은 대거 월가로 진출, 고등수학을 이용해 새로운 금융기법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세계화 경제시대를 겪으면서 금융수학의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절실해지고 있다. 작게는 개인 투자자의 투자 전략에서부터 크게는 국가의 금융정책의 수립, 국제 무역 수지의 균형, 대규모 투자 계획을 수립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금융수학을 필요로 하는 분야는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최성섭 교수는 “전통적인 금융이론은 다양화되고 복잡한 경제 현상을 설명하는데 심각한 한계를 드러내 왔다”며 “기체의 불규칙적인 운동을 설명하는 브라운 법칙이나 컴퓨터 모델링, 확률과 통계 이론 등 자연과학의 방법은 카오스로 가득찬 금융현상을 훌륭히 설명해 내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금융수학의 수준은 아직 초보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 교수는 “금융수학의 유용성과 필요성에는 다들 공감을 하고 있으나, 실제로 연구하는 이는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라고 말한다. 금융수학은 수학의 여러 기법은 물론 주가지수나 채권, 옵션 등 금융학의 지식도 필요하므로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 교수는 “어려운 만큼 보람도 크고 자신의 역량도 충분히 펼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금융수학”이라고 강조한다. 최 교수에 따르면 금융수학의 정도는 학부과정에서 확률론과 편미분 방정식, 수치해석, 통계학, 컴퓨터공학 등 수학의 첨단기법을 충분히 익힌 뒤, 대학원 과정에서 본격적인 금융수학 과정을 전공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금융수학은 보이지 않는 미래의 투자환경에 대한 분석이므로 폭넓은 관련 지식을 섭렵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현상은 숫자 자체의 합산으로만 설명되는 것이 아니므로 역사나 철학, 투자자의 공황심리와 탐욕 등을 분석하는 심리학, 생물종의 진화패턴 등 인문·자연과학의 폭넓은 관심도 금융수학에 필요하다고 이야기될 정도다.

최 교수는 금융수학의 역할을 한미디로 “비행기의 항법장치처럼 수많은 변수를 정리해 조종사(투자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난기류에도 조종사가 비행기를 안전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관련된 변수를 최대한 많이 종합적으로 정리해 안전한 항법장치를 제공하는 것이 금융수학의 몫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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